의사 이야기 (完)44 의사이야기를 마치며 어제 막, 2005년 대학교 입학부터 6년간 죽 살아왔던 신촌의 학교 앞 오피스텔과 작별하고 길음동의 그리 넓지 않은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친동생과 같이 살게 되어서 든든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원룸에서 살면 으레 느끼는 답답함도 없어서 좋긴 하지만 제 2의 고향인 신촌을 떠나오니 굉장히 섭섭하고 허전합니다. 이제는 매일 아침 창가로 보이는 연세대 ROTC 운동장도, 성산대교부터 청담대교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려주던 강변북로 교통안내 전광판도 안녕이지만 의사 양반이 이백쉰번째 새 출발을 했듯이 이제 저도 또 다른 마음가짐으로 새 출발을 해야겠지요. 6년, 군대 복무기간을 포함한 남자 대학교 학생의 평균 대학생활 보다는 조금 짧은 시간이었습니다만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일로 가득 가.. 2010. 12. 12. 한 의사의 이백쉰번째 또 다른 새로운 시작 시간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고 항상 옆에 붙어서 고통을 주는가 하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또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이것이 시작의 끝이 아님을 이것 역시 또 다른 하나의 애벌레 기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의사는 결코 웃을 수 없다 언젠가 진정한 끝이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인생은 그렇게 흘러 가는 것이다 매일 하루의 종말을 고하던 한 여관방의 어두운 307호 방도 밤마다 날아드는 편지에 쏟아내던 가난한 외국어와 눈물들도 결코 마음을 열지 않았던 전시품들과 유리병 속의 장미들도 니블헤임에 대한 부끄러움과 물감들도 변기에 그득한 토사물들과 산만하게 끓어대던 골수들도 이제는 덤덤해졌지만 끝임 없이 만나고 사랑하며 또 다른 새로운 흔적들을 남겨야만 하는 것.. 2010. 12. 5. 콘스타페이숀 의사의 땀냄새가 진동하는 똥을 한판 싸줘야 하는데 변비랜다 아랫배가 묵직하니 아주 죽을 맛이지만 아랫동네로부터는 영 기별이 없다 단백하고 팍팍한 요즘의 생활이 대장을 비롯한 온 몸의 수분을 다 빨아들인 탓일까 덩달아 나의 뇌마저 아주 바삭바삭해질 지경이다 변비를 해소하기 위해 시원하게 물 한잔을 원샷! 하다가 맛이 이상해 보니 손에 들려있는건 술병이고 뭐 어떠냐 이거라도 마시지 않으면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요즘엔 진득한 니블헤임의 방언도, 이리저리 마구 쏘아대던 두뇌發 뫼비우스의 띠들도 전혀 듣거나 볼 수가 없단 말이지 또다시 무책임한 외로움을 타는게냐 그것도 분명 아닌데 똥 그것이 문제로다 흐압 이젠 거의 다 되었다 2010. 11. 29. 진열품 의사는 간만에 정말 간만에 유리 진열대를 닦기 시작한다 마른 헝겊에 독한 알코올을 묻혀서 천천히 먼지와 얼룩을 닦아내고 안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을 조용히 꺼내서 정성껏 아주 정성껏 -이미 진열품의 대부분은 깨져있다- 먼지를 털어낸다 그간 이 진열품들을 모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이것들이야 말로 인생 최고의 보람이라고 생각했건만 그는 왜 그것들을 온전히 보관하지 못할까 무엇이든지 진열장에 들어가는 순간 몇 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깨지고 빛이 바래고 그래서인지 진열품들은 항상 의사를 미워하고 외면한다 항상 그들의 온기를 그리워하며 괴로워 함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진열대와 진열품들에게 크나큰 정성을 쏟음에도 불구하고 기억나지 않는 새벽이 지나고 나면 왜 모조리 깨어지고 박살이 나 있는 걸까 왜 좀 더 아.. 2010. 9. 26. 이전 1 2 3 4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