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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이야기 (完)

Awaken

by Jelly Jam 2009. 11. 26.


 술에 취해 한참을 걷다 어느 정도 술이 깨고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샌가 또 다시 평지를 걷고 있다

 어느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이젠 그가 목이 마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다 마셔버린 우물의 물을 도로 채워놓기 위해 땅을 파지 않는다는 말
 그 친구 역시 우물을 참 사랑했지만
 바닥을 드러낸 우물 앞에서 그는 참 차갑다
 열심히 우물을 파고 있던 의사에게는 참 낯선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의 앞에서
 딱히 그 친구에게 해줄 말도 없었고, 해주고 싶지도 않다
 의사는 목이 마르지만 물도 다 떨어지고
 급한대로 저번 마을에 들렀을 때 사서 부리던
 낙타의 오줌보를 짜서 마신다
 그렇게 정성들여 먹이고 보살피던 낙타였지만
 막상 필요할 떄는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오줌이라니
 그렇게 정성들인 시간들이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결코 세상은 그가 해준 것 만큼 돌려주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낙타는 무엇인가를 줄 생각도 없었던 듯도 싶다
 다만 그는 낙타를 참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애초에 의사가 우물을 팠던 이유도
 훗날 우물을 찾을 다른 누군가를 배려함인 이유도 있지만
 그 자신이 그저 우물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줌보를 끝까지 짜서 마시고 나니
 내일 내로 넘어가야 할 산이 아직 두개나 남았는데
 물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참 막막하다
 어젯밤에는 술을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지
 (술을 마시면 후에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그러나 술 취했던 시간들은 술이 깬 시간들에게 결코 말을 걸지 않는 법

 다음 넘어야 할 산의 험난한 봉우리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는 담배를 피면 참 외로워진다
 그러나 결코 변하지 않을 인생의 잔인한 계획 탓에
 묵묵히 걷는 것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힘내자 그리고 다음 마을에서 다들 뿌듯한 표정으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