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구내염에 고생하는 다은이를 간신히 재우고는 맥주 한 캔을 들고 책상에 앉았다. 해가 떠 있을 때는 혼자만의 시간에 하고 싶은 것들이 수십가지도 생각이 나지만 막상 아내와 딸이 잠들고나면 딱히 하는 일 없이 빙빙 헤매다 잠자리에 들곤 한다. 별 생각없이 인터넷 뉴스만 휘휘 뒤적이다 보니 죄다 우울한 소식 뿐이다. 그나마 요즘 정치권 뉴스는 조금 나아졌다. 정의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딱 그 정도의 소식이나마 간간히 눈에 띄는걸 보니 이제 세상도 조금씩은 바뀌어가고 있는 듯 하다. 32년차 인생을 사는 시점에서 다시 모멘텀을 바꾸어 보겠다고 무리수를 둔 나에게 있어 요즘의 바뀌어가는 세상은 오히려 차분하게만 느껴진다.
어쩌다보니 팔자에도 없는, 팔자에도 없을 줄 알았던 광주광역시로 이사를 오게 된지 벌써 2달이 되었다. 길어야 1년 반에서 2년 정도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계획이지만.. 불과 2개월 사이에 나는 이곳이 퍽이나 좋아져버렸다. (평균적으로) 매사에 급하고 퉁명스러운 경상도 사람들에 비해서 전라도 사람들은 꽤나 느긋하고 서글서글한 것이 영 정감이 잘 오고 간다. 비음을 제법 섞어서 둥그스름한 억양으로 말하는 전라도 사투리도 퍽 마음에 든다. 아내는 벌써 전라도 말투를 제법 섞어서 말 할줄도 알고, 간혹은 아예 전라도에 눌러 살자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농을 하기 시작했다.
가끔 H나 J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바쁘지만 활기가 넘치던 서울 생활이 떠오를 때가 있다. 하지만 끓는 아스팔트 활주로 위에서 C172 비행기의 Take-off Checklist를 확인하고 있다보면, 다소 늦었지만 해철이 형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라는 질문에 비로소 대답을 하기 시작한 내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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