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장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예전의 음악들을 듣고 있으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수면으로 희미하게 하나둘씩 떠오른다
그날의 깨끗한 하늘과 부슬부슬 내리던 봄비, 수줍게 나던 여드름과 두꺼운 안경, 연한 회색바탕의 모의고사 시험지와 교실의 퀘퀘하지만 정겨운 나무냄새. 하루하루 명확했던 목적과 다정하고 속깊은 벗들과의 대화가 공존하는 완벽한 날들이었다.
Y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10대로 돌아가고 싶다며 중학교때 깡말랐던 우리 둘이 찍힌 사진을 보여준다. 기억 속의 그날들보다 실제 사진 속의 모습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는것은 좀 의외였지만.
이제 어느덧 30대를 눈앞에 두고있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우리의 혹의 나의 20대는 참 투박했다. 10대 때 섭취했던 정서적 양분을 소비하기에 바빴다. 불투명한 목표와 미래에 짓눌려 당황한채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것만 같다.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모습과 실제 나의 모습은 한참이나 유리되어 있었고 가까운 미래 또한 보이지 않았기에 하루 하루 드는 충동과 짧은 판단만으로 이리저리 헤메다 지쳐 때로는 방바닥에서 자책하기도 하고 때로는 길에 주저앉아 포기도 했다가는 또 다시 일어서서 똑같은 발버둥을 치는 것의 악순환이었다.
무엇이 두 10년을 그렇게 다르게 만들었을까. 또 다가올 다음의 10년은 어떻게 보내야할까.. 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엉망으로 뒤죽박죽 섞인 고민과 감상과 반성과 감사함과 결심들에 잠긴채로 두 달 가량남은 20대가 기다리고 있는 서울을 향해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