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주민들이 마을에서 떠나간지 4년이 지난 지금에서 돌이켜 볼 때
각자의 두뇌에서 쏘아올린 어지러운 뫼비우스의 띠들은
방향을 상실한 채 허공을 맴돌다 사라져 버렸고,
영원할거라 믿었던 주민들 사이의 유대마저도
그들의 추억이 무색할 만큼 변색되어 이제는 어색해져버리고 만다.
그 후 계속해서 주민들에게 주어졌던 무수히 많은 새로운 인연들마저도
이제서야 돌이켜보면 과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 떠오르지도 않을만큼 멀리 와버린 지금,
그 의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여지껏 걸어왔던 길을 되새겨 본다.
이제는 흔적도 없이 낡아버린 그 시간들이 의사의 머릿속을 무섭게 엄습해온다.
영원할거라 믿었던 순간들.
애초에 영원이라는 것은 없다 라고 확신했던 그 의사에게도
낡아서 끝내는 사라져버린 시간들과 두뇌發 뫼비우스의 띠가 주는 공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듯 모든 것이 언젠간 낡아 사라져버릴 것이라면
여지껏 걸어왔던 이 길을 계속해서 재촉하는 것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의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또 다시 고민한다. 지금껏 고민해왔던 같은 딜레마를.
인생은 그렇게 흘러 가는 것이다.
주민들도, 술잔을 부딪히며 고래고래 외치던 우정들도,
뜨거운 체온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속삭이던 사랑마저도 이젠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길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 자신까지 도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끝임없이 만나고 사랑하며 또 다른 새로운 흔적들을 남겨야만 하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잔인한 숙명인 것이다.
계속 살아 나가야만 한다.
계속 살아 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또 다시금 걸어온 길을 추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들이 아프고 공허한 인생의 기만어린 장난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또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결론을 이백마흔여덟번째 짓고는,
의사는 다시 갈 길을 재촉한다.
이백마흔아홉번째의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