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추월하기 위해 지난 몇년간 부단히 걸었다
하지만 그는 태양이 항상 자신의 정수리 위에 정체되어 있다고 느꼈다
소소한 것에 만족했고
사소한 것에 괴로워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결코 도태되지 않으리라 수많은 다짐을 하며
때로는 저 뒤에 뒤쳐져서 바닥에 주저 앉아버리는 사람,
혹은 자신이 뒤쳐져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채 바보같이 웃고만 있는 사람,
이런저런 사람들을 뒤로 한채 끊임없이 걸었고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남들이 걸어간 만큼, 아니 가끔은 그 이상으로 걷고자 노력했지만
항상 머리 위의 해는 멈추어져 있다고 느꼈다
자신은 전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다고 느꼈다
의사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나,
기타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여건에 대해서 그다지 불만을 품어본 적도 없다
오히려 때로는 그것에 대해 감사해하며
솔직히 말하면 가끔씩은 스스로를 자위하기 위한
의사 자신을 향한 거짓말도 해가며
그렇게 묵묵하게는 아니더라도 나름 큰 불평없이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항상 해는 의사 자신의 머리 바로 위에서 그의 정수리를 달구며
끔찍하리만큼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 오늘은 길을 걷다 문득
자신의 그림자가 유난히 뒤로 드리워져 있는 것을 느낀 의사는
화들짝 놀라서 앞쪽의 하늘을 바라본다
정말 압도적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너무나도 크고 웅장한 또다른 태양 하나가
그의 눈 앞에 떠 있다
젠장맞을
지난 몇 년간 그렇게 길을 재촉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적어도 조금이라도 많이 걷기 위해서 마음을 졸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조그맣고 초라한 태양 하나를 추월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그의 앞에 또 다른 엄청난 태양 하나가 떠 있다
방금까지도 같이 걸으며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던 꼬질꼬질한 흰 망토를 입은 한 시인에게
눈 앞의 거대한 태양을 가리키며 그것의 존재를 알리려다가
그만둔다 그녀에겐 너무나도 잔인하다
눈 앞의 큰 태양은 고사하고 그의 머리 위의 자그마한 태양을 등질 수 있을 날조차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통을 꺼내서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분하다
내일 아침이면 아마 그 거대한 태양은 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겠지만
그렇다고 작은 태양이 하루 아침에 그의 등 뒤로 흘러가 버리지도 않을테니
오늘 압도적인 빛이 내 앞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욱 더 힘을 내야 한다
기가 죽어버린 의사는 잠깐 뒤를 돌아본다
여전히 낙오된 많은 사람들이 사막 위에서 뒹굴고 있거나 잠을 자고 있다
하지만 머리 위의 태양은 그가 뒤를 돌아보는 그 순간에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실은 그것은 지구가 자전하는 것이지만
뭐 어떤가 실제로 무엇이 회전을 하는지는
요즘같은 시대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걷지 않으면
태양이 금새 움직여 내 앞을 추월할 것이라는
말도 안되지만 이 세상이 모두 맞춰서 움직이고 있는
그 아이러니 앞에 굴복해야 한다 순응해야 한다
그리고는 이를 악 물고 걸어야 한다
다들 다음 마을에서 뿌듯한 얼굴로 만나자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잘난척하면서
태양이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고 지껄여대며
살찐 돼지같이 떠들어대는 상황이 와도
별 수 없잖은가
지금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는 시대이다
살아 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