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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잡설

엽밴 이야기

by Jelly Jam 2014. 5. 6.

 

 

 

 

 얼마 전 다시 뭉친 엽밴 친구 놈들과 합주를 했다. 곡목은 13년 전 그대로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와 Enter sandman였는데, 학창시절 연주 했던 같은 곡을 같은 친구들과 같은 표정으로 연주하고 있으니 마치 13년 전의 시간이 오묘하게 변주되어 우리들 사이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와 같은 점이라면 여전히 기타 지판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연주에 골몰해 있는 호성이, 짧은 머리를 한 채 절반의 긴장과 절반의 여유를 담은 표정으로 줄을 퉁기고 있는 준엽이, 기타를 치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보컬 James Hetfield의 중후한 목소리를 어설프게 따라하는 나의 모습이다. 13년 전과 마찬가지로 설레임과 열정, 순간 순간 우리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그 에너지들이다. 장난스럽게 오고가는 불평과 지적, 가벼운 욕설을 통해 느껴지는 우정이다. 다른 점이라면 다들 살짝 (혹은 많이) 나온 똥배, 예전보다는 많이 단가가 올라간 악기와 장비들, 막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던 그 당시보다는 능숙해진 실력이다. 그렇게 예전과 '같고도 달랐던' 연주는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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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같은 학급 반장이었던 우현이가 들려준 메탈리카의 'Symphony & Metallica (S&M)' 라는 앨범을 듣는 순간 나는 메탈과 락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 전에 내가 듣던 음악은 주로 아이들 음악이나 김건모, 신승훈 같은 기성 가수들의 음악이었다. 물론 지금도 크레용팝과 쇼팽을 동시에 사랑하고 있지만 그 당시 메탈과 락은 나에게 있어 콜롬부스의 신세계 같은 것이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

 중학교 졸업 전에 메탈리카 곡으로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에 교회에서 베이스를 치던 준엽이, 피아노는 잘치는데 기타는 처음이에요 호성이, 메탈리카는 죽어도 싫지만 드럼은 좋다던 재민이, 그리고 자퇴생 사촌 상식이형이 모여서 드디어 밴드가 완성되었다. 다들 취향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지만 '메탈리카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는 나의 초강력한 고집에 의해 첫 곡은 Enter Sandman과 Master of puppets로 강제 확정. (물론 그 후에는 다른 종류의 곡들도 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전부 초보들 주제에 그 어려운 곡을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 물론 기타 솔로를 할 실력은 커녕 리프도 제대로 치지 못했던 실력들이었기에 솔로란 솔로는 다 건너뛰고 그냥 verse 부분만 죽어라고 쳐 댔었다. 기타는 12만원짜리 카와사미 제품을 썼는데, 펜더 디자인만 그대로 베낀 소위 '장작기타'였었다. 튜닝에 대한 개념도 없어서 음정이 하나도 안맞는 기타로 4만원짜리 국산 드라이브 이펙터 하나만을 물린 채 그야말로 쟈오지장지지 모드였지만 합주를 하는 동안 만큼은 우리가 메탈리카 그 자체였다. 합주실? 그 당시 대구 촌동네에 그런게 어디있나. 당시 다니던 교회 중등부실 캡스보안장치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평일에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가 교회 전체를 시끄럽게 울려대곤 했었다. 한번은 교회 선배들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한바탕 싸우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이야 좋은 악기로 좋은 합주실을 빌려서 마음 편하게 연주하지만 그때는 무거운 기타를 매고 집에서 먼 교회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몰래 숨어서 연주하다가 들키면 또 도망쳐서 나갔다가 또 몰래 숨어들어와서 연주하기의 연속이었다. 한번은 교회에 사람이 많아 도저히 합주가 불가능해지자, 비까지 오던 날 앰프까지 전부 바리바리 싸들고 30분거리의 상식이형이 다니던 고등학교까지 가서 연주를 한 적도 있었다. 그 열정, 그 때의 그 열정으로 지금 우리가 무언가를 또 꿈꾼다면 무엇이 불가능할까.

 밴드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3천원 짜리 돈까스 집에서 머리를 맞대다가 엉뚱하게도 이름이 'Yupp Band' 로 정해졌었다. 당시 윤도현 밴드의 영감을 받아서 이준엽 밴드 -> 엽Yupp밴드가 되었다는 이준엽의 주장이 있지만 낭설일 뿐이고 어떻게 이름이 엽밴이 되었는지는 아직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아무튼 그날 이후 우리는 '엽밴'이 되었고,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3차례 공연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덕원중 축제 공연만 예정이 되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신명여중과 이곡중에서도 공연을 하게 되었다. 얼떨결에 '이곡-신명-덕원'으로 이어지는 월드투어(?)를 하게 되었는데 남아있는 자료는 크게 없지만 당시 신명여중에서 했던 공연 음원 부틀렉 하나가 유일하게 남아있다.

 

평생 잊혀지지 않을 날들이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튜닝도 없이, 변변한 장비도 없이, 아무런 준비나 지식도 없이 무작정 올라가서 자기네들끼리 신나게 한바탕 하고 내려온 것이지만 그때 관중들 앞에서 생애 처음으로 느꼈던 그 기분 좋은 떨림이란. 그 쾌감어린 떨림 하나가 오늘까지도 우리로 하여금 악기를 놓지 못하게 하고 있다.

 후담으로, 공연 때 나는 보컬로 무대에 올랐는데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첫 곡이 끝날 때 즈음엔 입이 바짝바짝 말라 입술을 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두번째 곡 전주가 나오던 도중 무대 밑으로 뛰어 내려와 무대 옆에 있던 수돗가로 달려간 뒤 수도꼭지에 대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잽싸게 무대 위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또 이벤트 업체에서 드럼을 안빌려준다고 해서 급히 용달차를 불러 교회 중등부실 드럼을 싣고 짐칸에 같이 타서 도로를 달리던 기억, 5기통 드럼 마이킹을 위한 이벤트 업체의 믹서 채널이 넉넉지 못하다고 해서 교장실로 쳐들어가 켄터키 교장선생님께 24채널 믹서를 해달라고 조르던 기억, 이곡중 공연이 끝나고 밀려드는 싸인 공세에 헤벌죽 거리던 기억. 각자 살기 바쁜 오늘날에도 우리를 다시 모이게 하던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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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전 13년만에 처음으로 Master of puppets와 Enter Sandman 완주를 했다. 어떠한 생략도 없이 8분 35초간을 오롯이 그대로 연주해냈다. 우리에겐 굉장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나 또한 엽밴 이후 십수년간 수많은 밴드에서 수십번의 공연을 통해 수백개의 곡을 연주했었고 그 두 곡보다 더욱 더 무지막지한 난이도의 곡도 연주했지만, 13년전 그날 이후 그 두곡은 한번도 연주된 적이 없었다. 일부러 연주 하지 않았다, 미완의 미학이다, 뭐 이런 미사어구를 늘어놓아도 어색하지 않지만 사실 그런건 아니고! ..그냥 언젠간 그때의 그 친구들과 같이 완성이 되려고 그랬나보다, 정도로 정리 될 것 같다.

 그 두 곡 외에도 메탈리카의 다른 명곡들이 앞으로 엽밴에서 연주가 되겠지만 이 두 곡을 완주 한 직후 만큼은 어설프게나마 소감같은걸 써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틀에 걸쳐 장황하게 남기는 바이다. 뿅.

 

좋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