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O를 우연히 만났다. 오래 전 시집을 가서 사내아이를 둘 씩이나 낳고 사는 그녀가 왠일인지 그날은 베이스 가방을 매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묻는 내게 그녀는 오늘이 공연날이라며, 다음순서가 자기 차례라며 보고 가라고 했다.
동행이었던 P과장님과 함께 들어선 지하 공연장엔 예전 학창시절 함께 음악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 저마다 악기 하나씩을 들고 리허설 중이었다. 여전히 작은 키에 갈색 폴라를 입고 사운드를 유심히 체크하는 S, 우향 우 고개로 드럼 연주에 몰두하는 Y, 키보드 앞에서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공중을 응시하던 S, 회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C형 정도가 기억나고 나머지 사람들도 당시 음악을 하던 시절 한 두번씩은 스쳐 지나간 적이 있던 정겨운 얼굴들이었다.
뜻밖의 반가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라 친구들에게 다가가 짖궂은 장난을 걸며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옆에 누운 아내의 뒤척거림에 잠을 깼다.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해 보았지만 반가움에 뛰는 내 심장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탓에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항공사에서 나온 후 요즘 몰두하고 있는 영어학원 교재 출력물 뭉치들이 책상 위에서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공연이 벌써 10년이 넘었나? 요즘 가지고 있는 악기가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어디 서재 구석에라도 쪼그리고 앉아 예전에 가지고 있던 베이스를 손가락이 얼얼할 때까지 연주해야 꿈 속에 두고 온 설렘과 그리움을 떨칠 수 있을 것 같은 새벽이다. 언젠간 꿈 속 지하 공연장으로 친구들과 다시 한번 돌아갈 기회가 있을까? 아쉬운대로 베이스기타 대신 스마트폰에나마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끄적여보았으니 이제 침실로 돌아가 다시 잠을 청해볼까 한다.
[창고]일기는일기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