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javu
2년전 여름,
대구에 내려간지 3개월이 되어갈 무렵
자기 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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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가 서울에서 6년을 살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곳에서의 기억들이, 단지 길고 길었던 하룻밤의 꿈처럼 느껴지고 나는 이미 무더운 이곳에서의 일상에 너무 익숙해 버렸는데.
매주 주말이면 한 시간이나 걸려 버스를 타고 닿았던 시끄러운 방배동 합주실의 열기도,
졸린 눈을 부비며 아침마다 정확히 8분을 걸려 도착하던 ROTC 운동장 뒷길과 인문대 사이의 길도, 밤 11시에 전화 한 통을 받고 지갑, 핸드폰, 담배를 들고 술을 먹으러 나가는 설렘도, 왁자지껄한 술자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면 항상 내 코를 만져주던 신촌 새벽의 적막한 공기도, 늦은 아침에 일어나보니 선풍기만 가만히 돌고있던 적막한 여름의 내 자취방도, 창문을 열면 쏟아지는 신촌대로의 차 소리를 들으며 양쪽 창문을 열어놓고 피던 아침의 첫 담배도,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듯 쓰던 오늘날 현대의 교양있는 서울지역 사람들이 쓰던 말투도, 당신들과의 기억들도.
일어나보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꿈처럼
그렇게 그렇게 무더운 대구의 여름날 열기 속으로 사라져간다.
어느덧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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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대구에서의 지난 두 번의 여름들이 더욱더 멀어지고 있지만 뜨겁던 정오의 햇볕은 지금까지도 내 뒷 목덜미를 달구고 있는듯 하다. 아침 9시쯤 눈을 떠서 좀 더 일찍 일어나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아침을 차려 먹고 5층 독서실로 터덜터덜 걸어가던
착잡함과 느긋함이 묘하게 공존하던 1년전 오늘의 그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가끔 깔깔이맨으로 부르곤 하던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먼저 와있기도 했지만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독서실의 불을 켜고 에어컨을 켜고 앉아서 당시 연병장을 뛰어다니고 있었을 리준엽 훈련병에게 편지를 한 통 쓰고 있으면 여자친구 코알라 양이 배고프다고 툴툴 거리면서 독서실로 들어서곤 했었다. 생물, 물리, 화학 교재와 투닥거리고 코알라양과 투닥거리고 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밖은 어두워져 있었는데.
또 한번의 여름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2005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내 안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이후로
(라고 쓰고 혼자 잉여짓을 할 시간적 여유가 생긴 이후로 라고 읽는다)
나는 예전보다는 제법 행복해진 것 같다. 나에게 상처를 주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진정으로 나를 아껴주는 친구들만이 오롯이 남아 나를 응원해주고 있고, 감정과잉의 증기사우나 같던 연애들도 이제는 넉넉한 마음만이 남은 결혼 생활로 수렴되었고,
그리 특출난 성공가도는 아니지만 아내와 미래의 아이들을 먹여살릴 직장과,
항상 뜨거운 사랑을 주시는 부모님 및 처가 어른들,
무엇보다도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코알라 아내.
1년 뒤에는 또 어떤 글을 쓰게 될 지 아직 모르지만
계속해서 감사하며 뜨겁고 재미있게 살아가야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일부터 연휴다 (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