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이야기 (完)

한 의사의 이백쉰번째 또 다른 새로운 시작

Jelly Jam 2010. 12. 5. 20:35








시간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고 항상 옆에 붙어서 고통을 주는가 하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또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이것이 시작의 끝이 아님을
이것 역시 또 다른 하나의 애벌레 기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의사는 결코 웃을 수 없다
언젠가 진정한 끝이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인생은 그렇게 흘러 가는 것이다
매일 하루의 종말을 고하던 한 여관방의 어두운 307호 방도
밤마다 날아드는 편지에 쏟아내던 가난한 외국어와 눈물들도
결코 마음을 열지 않았던 전시품들과 유리병 속의 장미들도
니블헤임에 대한 부끄러움과 물감들도
변기에 그득한 토사물들과 산만하게 끓어대던 골수들도 이제는 덤덤해졌지만

끝임 없이 만나고 사랑하며 또 다른 새로운 흔적들을 남겨야만 하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주어진 숙명인 것이다
계속 살아 나가야만 한다
계속 살아 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또 다시금 걸어온 길을 추억하겠노라

이제 마지막 언덕을 넘으니
드디어 목적지인 대도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의사는 잠시 멈추어서 허리를 편다

또 어떤 삶이 또 그를 기다리고 있을까
의사의 이백쉰번째의 새로운 시작이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