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들이 잃어버린 것 (pt. 2)

(1부에서 이어짐)
# Part 2. 그들이 잃어버린 것 : 'Progressive' Metal.
MP는 기타리스트 John Petrucci (이하 JP)와 함께 1~4집의 항상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곡가로서, 그리고 5집부터 10집까지는 프로듀서로서 Dream Theater의 음악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그들 음악에서의 MP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탈퇴로 인한 Dream Theater 음악의 변화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 대중들의 입장에서 Dream Theater 음악이 가지는 가장 큰 driving force이자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기계같이 정확한 연주? 멤버들의 화려한 테크닉? 아니면 그들을 한데 묶어주는 곡의 서사와 컨셉트? 어떻게 Dream Theater는 Progressive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커리어를 가진 밴드가 될 수 있었을까.
당시 PC통신가를 중심으로 돌던 루머 중에 라이브와 스튜디오 버젼의 러닝 타임이 초 단위까지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는 너스레까지도 있었을만큼 그들의 정확한 연주력은 유명하다. 그것이 분명 누구에게는 매력적인 요소가 되겠지만 음악이 어디 올림픽 같은 운동경기도 아니고 정확성을 내세우는 밴드라니! 그 이름도 유명한 라스 울리히의 자유분방한 연주를 반례로 든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 엉성한 라스 울리히도 올해 40주년을 맞은 역사상 최고 메탈밴드의 드러머로서 인정을 받는 판에 정확성 따위는 음악과 밴드의 성공에는 크게 상관이 없다. (필자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메탈리카 키드임을 밝혀둔다) 아니면 개인의 화려한 테크닉인가? 솔직해지자. 화려한 연주력과 테크닉 측면에서만 보면 JP는 Steve Vai같은 플레이어들에 비해서는 몇 수 아래이며, MP의 경우에도 멀리 찾아볼 것도 없이 후임 드러머인 Mike Mangini나 Terry Bozzio같은 멜로딕 드러머에게 밀릴 수 밖에 없다. Modern Drummer Hall 명예의 전당 최연소 가입자이자 모든 락 드러머의 교과서인 Neil Peart는 그들에 비하면 오히려 투박하기까지 하다.
Dream Theater 음악의 최대 장점에 대한 단서는 바로 그들 음악 장르 이름에 숨어있다.
'Progressive' Metal. 그들은 항상 변화하며 진보해왔기 때문이다. 앨범을 낼 때마다 매번 비난은 있어왔다. 때로는 너무 실험적이다, 때로는 변절이다, 때로는 너무 최근 트렌드에 편승한다라는 비난은 이제 그들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매번 앨범을 만들때마다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통해 변화와 진화를 꾀하고, 끝없이 변하는 시대적 트렌드를 읽어내려고 하는 고민의 흔적은 결국 그들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비록 모든 팬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지만, 성가시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했던 끝없는 허물벗기를 통해 20년, 30년간 한 장르의 정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2집과 'Pull Me Under'의 대성공에 안주했다면 그 후에 숨겨진 명반 3집 <Awake> 이나 불세출의 걸작 5집 <Scenes From A Memory>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거기서 안주했다면 그 후 만개한 그들의 기량을 통해 약 30년간 쏟아진 무수한 명곡들을 우리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음악적 고민과 실험, 변화와 진화 그리고 발전과 성공에 이르는 과정은 ㅡ감히 말하건데ㅡ MP가 중심에 서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항상 밴드의 작업에서 당시 트렌드와 다른 아티스트들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작업에 반영하는 역할이었다. 그들 작업실에 항상 등장하는 칠판에는 작업중인 각 segment들의 이름이 아예 영향을 받은 밴드 이름으로 쓰여져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항상 그 네이밍은 MP의 몫이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단순히 그것들을 차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side project에도 참여하며 Dream Theater의 음악에 상호유기적인 변화를 모색했다) 당시 Dream Theater의 writing session을 촬영한 비디오를 보면 항상 믹서 뒷쪽으로 당시 작업 당시 영감을 받았던 ㅡ혹은 받으려고 했던ㅡ CD 앨범이 일렬로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렬되어 있던 그 아티스트들의 연식과 장르는 참 다양했다. 판테라부터 라디오헤드, 뮤즈와 Queen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그 리스트는 매번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무쌍했다. 시대를 앞서간 선배 밴드부터 까마득한 후배 밴드까지, 소위 빡센(?) 음악부터 우울한 음악까지. 그리고 그들 아티스트의 공통점은 바로 당시 음악적 트렌드, 혹은 각 장르의 가장 최전방에서 그 핵심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트렌드 세터적인 아티스트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DT 특유의 요소와 섞었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 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Repentance', 'Never Enough', 'Misunderstood', 'Glass Prison' 등의 곡에서는 그 출처가 너무 노골적이긴 했지만 기존 Dream Theater의 핵심요소들이 다른 거장들의 음악이 섞여서 새로운 의미의 Dream Theater로 진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마치 5집 'Overture 1928'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과 벅참 못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Dream Theater의 신보가 진화를 게을리하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MP의 탈퇴 이후이다. 10집 발매 이후 그가 탈퇴를 선언하자 당연하게도 팬들과 평단에서는 난리가 났음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그 직후 발매 될 차기 앨범을 둘러싸고 눈에 불을 켜고 벼르던 팬들과 비평가들의 평가가, 그들은 두려웠다. 잔뜩 소심해진 밴드는 11집 <A Dramatic Turn of Events>를 아예 그들의 '보증수표' 2집 <Images and Words>의 복사판으로 뽑아버리는 (그것도 양 앨범의 곡들을 노골적으로 하나씩 매칭시켜서) 대참사를 저지르고 마는데 그것은 그들의 음악적 정체 혹은 퇴행의 시발점이 된다. 그 이후로 DT의 신보는 매번 그들 마음의 고향인 Rush, YES, Genesis에서 도통 벗어나지 못했고, 작곡 과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뻔한 전개와 구성 및 진부한 멜로디, 식상한 솔로로 덕지덕지 도배가 되기 시작한다. 신보가 나올때마다 멤버들은 인터뷰에서 '제로 베이스부터 스튜디오에 함께 모여 똑같은 지분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즐겁게 곡 작업을 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것 참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매번 나오는 곡마다 누구 작품이라고 이름만 안 써있었지, 1) 너무나도 노골적인 JP표 리프와 멜로디 2) Jordan Rudess의 식상한 어프로치와 사운드 3) 항상 동일한 타이밍에 뜬금없이 치고 나오는 John Myung의 유니즌 끼어들기와 특유의 텐션 스케일 어프로치, 속주 유니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매특허 root/fifth 알박기(?)까지. 어쩌면 그렇게도 매번 동일한지. 이번 15집에서도 긴 분량의 대곡이 하나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앨범명 <A View From The Top Of The World>과 동일한 이름의 그 마지막 트랙은 아직 공개전 이지만 나는 그 곡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Breaking All Illusions'와 'Illumination Theory'가 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처럼 ㅡ나는 진심으로 나의 예측이 보기좋게 빗나가길 바란다ㅡ 아마 새로운 그 대곡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예전의 그것을 답습할 것이 유력하다.
이번 2부 연재분을 마치기 전, 14집 <Distance Over Time> 발매 당시 썼던 앨범 리뷰 중 일부를 인용하여 덧붙이고자 한다. 이번 분량이 상당히 비판적으로 흘러갔지만 그들의 음악에 대해 내가 가진 근본적 애정과 존중을 에둘러 표현하기 위함이다.
(중략) .... 과거 MP 시절에는 앨범에 영향을 주던 아티스트들의 연식이 계속 젊어졌었다. Panic Attack이나 Never Enough는 충격이었지. 후배 밴드들에게도 끝없이 배우고 트렌드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밴드의 방식이 존경스럽기도 했는데 어째 MP 탈퇴 후에는 갈수록 옛날 선배밴드들의 스멜이 진해지는 느낌. 특히 이번 앨범 중반부 트랙들은 대놓고 YES, GENESIS, RUSH다. 이번 앨범에서는 과거에 시도하지 않았던 djent같은 스타일도 차용하는 등의 노력도 보이지만, 뼈대는 여전히 70-80년대의 그것이다.
밴드가 변화해가는 방향에 정답은 없지만 말 그대로 진보(Progression)를 위한 진화는 가혹하고 대담해야 한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성장은 정지한다. 이미 그들은 30년 이상을 진보해왔지만 조금 더, 조금만 더 힘을 내주길 바란다면 내 욕심일까.
(3부에서 계속)